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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 거기 있어도 돼!...자기보살핌, 자기 허용, 자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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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거기 있어도 돼!(두려워 해도 돼!)...자기보살핌, 자기 허용, 자기 사랑



에고와 가슴 사이의 무인지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헤매고 있습니다.

부정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처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심판입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바라보면 중독자나 우울증 환자나 실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

그저 최대한 상냥하고 친절한 보살핌을 받아야만 할 내면의 고통이 보일 뿐입니다.

에고로부터 가슴으로 옮겨가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내면의 고통을 기꺼이 이해해주려는 태도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근원을 이해하고 그저 거기에 있도록 허용해 주세요.

에고를 중심 삼은 의식의 모든 표현들의 가장 깊은 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가슴에 중심한 의식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태도가) 아무리 괘씸하더라도 그 밑에 숨겨져 있는 고통과 외로움과 자기보호 본능을 알아차리면 여러분은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영혼과 살을 맞대고 만나게 됩니다.



두려움에 떠는 영혼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여러분은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에게 제일 먼저 적용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욕구, 태도, 행동 등의)동기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요소를 찾아낼 수 있습니까?

거기에 두려움이 있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이렇게 느끼는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 “아이쿠, 내가 그렇게 겁을 먹은 줄은 몰랐어! 도와줄게.”

이제 여러분의 태도에는 참을성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공격성이나 중독이나 비굴함이나 공허함 등의 두려움에서 나오는 행동나쁘거나’ ‘죄 많거나’ ‘멍청한것으로 판단하는 한 여러분은 자신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우리는 왜 무엇을 심판해야 합니까? 매사를 옳고 그른 것의 틀 속에 구겨 넣으려 드는 이 충동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심판하고 싶어하는 충동 뒤의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내면의 어둠을 직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중립적 시각그것은 있는 그것을 그저 알아차리되 그것이 어때야 한다는 생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에고에서 비롯된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그저 지켜보고 그 속의 두려움의 알맹이를 인식하여 에고가 여러분의 눈앞에 실로 투명하게(확연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투명(확연)하게 보이는 것은 원하기만 하면 다 놓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현존수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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